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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 아베베 비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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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수업에 사용할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다. 이제 1권 끝냈는데 아직도 1권을 더 써야 한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보통일이 아니다. 고성능 데스크톱이 있는 워크스테이션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할 순 있지만, 시간이 모자르기 때문에 작은 노트북으로도 집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에는 집필이 보통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 동안 살면서 도구 때문에 일을 못하는 경험이 많았고, 남들이 이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을 본 적도 많았다. 하지만 도구가 없으면 모를까 있는 도구를 탓하면 일을 진행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 이걸 몸소 증명해준 아프리카의 영웅 아베베 빔킬라가 있다. 

 

아베베 비킬라(출처 나무위키)

 

아베베는 원래 이디오피아에서 황제의 친위대에 복무하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 재미삼아 출전한 군인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이디오피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선발된 대표선수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국가대표로 대신 출전하게 되어 1960년 이탈리아의 로마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디오피아는 이탈리아에 침공당한 적이 있는 만큼, 이디오피아인들은 이탈리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이디오피아의 마라톤 선수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니 이디오피아인들은 열광했다. 거기에다가 아프리카 출신 흑인으로서 최초의 금메달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다. 

 

가장 극적이었던 사실은 아베베가 신발도 없이 맨발로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디오피아가 가난해서 신발이 없었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실은 아베베가 늦게 대표팀에 합류하는 바람에 맞는 신발이 없었던 것이다. 금메달 획득 후 이디오피아 황제가 직접 아베베를 마중나와 왕관까지 씌워주고 금반지와 금시계를 하사하기까지 했고, [맨발의 아베베]로 유명해졌으며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아베베는 영웅이 되고도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다시 출전한다. 대회 40일 전에 맹장이 터지는 바람에 맹장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아베베의 금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다. 일본은 아베베의 우승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디오피아 국가연주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상식에서 일본기미가요를 연주하여 엄청난 구설수에 올랐다. 이디오피아 대표팀의 엄청난 항의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언론의 비판으로 인해 도쿄 올림픽의 흑역사가 되었다. 일본측에서 예상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아베베는 중반부터 줄곧 1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경기중에라도 이디오피아 국가연주를 준비했었어야 했다. 워낙 흑역사였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영상들은 IOC에서 이디오피아 국가를 덧씌었지만, 아베베의 표정이 굳은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베베는 신발없이 완주한 올림픽에서 우승, 맹장염 수술 후 40일에 우승하는 등 올림픽 마라톤에서 2번 금메달을 땄다. 아직까지도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한 사람은 3명 뿐인데 2연패를 달성하면서 세계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사람은 아베베 뿐이다. 

 

이후 놀랍게도 아베베는 대한민국에서 주최한 동아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국제대회는 외국에서 별로 존중받지 못했으나, 아베베가 출전하는 바람에 세계적 선수들이 앞다투어 출전하여 대회의 수준이 높아졌다. 당연히 이 대회에서도 아베베가 우승하였다. 

 

여기까지의 인생만 봐도 아베베 비킬라는 영웅으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서도 아베베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다.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여 목뼈가 부러지고 척추가 손상된 것이다. 아베베는 황제의 경호원 출신이었고, 당시 맹기스투의 반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황제의 측근들이 줄줄히 죽어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아베베의 교통사고가 우연이었는지는 논란이 있다. 만약 맹기스투가 아베베를 죽이고자 했다면 세계적인 영웅을 함부로 암살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교통사고로 가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사고에서 아베베는 살아남았지만 척수손상으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하지만 양팔이 멀쩡한 아베베는 다시 운동을 하였고 상체의 힘만으로 각종 장애인 대회에 출전하여 펜싱, 탁구, 양궁, 눈썰매 에서 메달을 땄다. 많은 사람들이 아베베가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땄다고 알고 있는데, 패럼림픽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대회에서 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이 영웅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이후 41세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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