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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연구자에서 회사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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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현재, 나는 아직 연구자이다. 2005년 석사학위를 시작하면서 연구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제법 활발하게 2020년까지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Bric 에서 IF 점수가 10점이 넘는 논문저자에게 부여하는 [한국을 빛낸 사람]에 4번 선정되었고, 대학에 자리잡은 뒤로는 정부 연구비와 기업연구비를 여러 차례 따냈다. 연구성과로 보나 연봉으로 보나 스스로 제법 성공한 연구자라고 자부한다. 박사학위를 졸업할 때 한 차례 Burn out 증후군과 개인사로 인한 우울증을 앓았고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이 증후군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한거 같지만, 연구는 계속되었다.

 

2020년 중반에 한 바이오 스타트업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여러 바이오 스타트업에서 물밀듯이 좋은 조건으로 이직 제안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2편의 연구논문들이 스타트업 분야에서 제법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내가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감히 바라보지 못했던 수준의 연봉과 스톡옵션등의 조건을 제안받기도 했고 일이 재미있어 보였다. 

 

하지만 대학에서 주는 안정감과 자율성을 포기하는 것은 당시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거액을 지원받은 정부연구과제는 더욱 이러한 생각을 합리화시켰다. 이것 때문에 바이오 스타트업에 가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021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정부과제 지원서가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변의 위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겸손한 멘트로 답했지만, 2020년까지 과제 합격률이 제법 높았던 필자로서는 솔직히 충격이었고 마음속으로는 전혀 겸손하지 못했으며 이러쿵저러쿵 피해의식도 생겼는데, 오히려 이것이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거 같다. 

 

하반기에도 바이오 스타트업에서 제안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연봉뿐 아니라 직위까지 함께 제안받았고, 제법 마음이 끌렸다. 내가 하고 싶었던 연구분야를 다루는 스타트업이기도 했고, 아직 작은 기업이지만 필자의 상식을 뛰어넘는 연구비와 투자를 받았다. 대표는 연구비와 투자금 확보하는 능력이 출중해 보인 데다가, 연구성과도 필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대화도 잘 통할거 같았다.

 

당장이라도 이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대학이 그리 녹록한 곳은 아니었다. 법으로 강제하지는 않지만 도리상 해당 학기의 강의는 모두 책임지는게 옳고 (옳다고 믿었고), 약간 남은 연구과제 연구기간도 마무리하는게 옳다고 믿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2021년 12월말까지 대학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2022년 1월부터 출근을 하기로 협의하였다. 

 

스케쥴에 다소 무리가 생겼지만, 일주일에 최소 1,2번은 회사 쪽으로 가서 미리 회사업무도 파악하고 연구소도 세팅하고 있다. 연구 팀원들도 각자 개성은 뚜렷하지만 의사소통은 원활한 거 같고, 학교의 구내식당과 비교하면 식사도 항상 맛있었다.

 

마음은 확실히 굳어져 의지가 섰다. 대학에서의 다소 느근한 출퇴근 시간은 포기해야겠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얻는 장점도 있을 것이고, 대학에서의 연구 자율성도 포기해야겠지만, 그만큼의 권한도 주어졌다. 이렇게 나는 2달 후 바이오 스타트업의 CTO로 이직하게 된다.

 

2022년은 필자에게 2가지나 되는 커다란 변화가 있다. 지독하게도 운이 따라주지 않던 아파트 청약을 2년전 가까스로 뚫은 후 드디어 8월에 입주할 것이며, 직업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회사원으로서 같은 연구를 수행하는 입장이어도 커뮤니케이션에 늘 신경써야 할 것이고, 연구결과는 논문으로 끝나지 않고 상용화를 늘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다. 스스로를 많이 바꿔야 할 것이고 생활습관도 개선해야 하며, 몇 가지의 누림은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워라벨은 이제 물 건너간 거겠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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