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렸을 때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다. 다가올 죽음이 너무나도 두렵고 슬펐지만,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또 다시 공포감에 휩싸이곤 했다. 뇌과학적으로 딱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증명된 건 아니지만 죽음이 보통 고통을 동반한다고 가정하면, 납득할만한 설명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며, 이는 어릴수록 그 정도가 심한 거 같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단맛을 좋아하고 갈구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단맛이 몹시 찾기 힘들면서도 영양학적으로 큰 이득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마음만 먹으면 단맛을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인간은 단맛을 내는 성분 과잉에 대응할 메커니즘을 진화시키지 못하였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고 싶어하는데, 이는 평균수명이 몹시 짧았던 시절에 종의 존속을 위한 장치로서 진화되었을 것이다. 평균수명과 기대수명이 80살에 달하는 지금 자살율이 높아지고 있는 건 어쩌면, 진화적으로 과잉수명에 대응할 뇌 내의 메커니즘이 진화되지 못한 탓일 수 있다.
수명과 건강수명은 다른 개념이다. 100살에 죽음을 맞이하면 수명이 100살이지만, 건강하게 몇 살까지를 따져보면 70세 정도이지 않을까? 인간은 오래 살고 싶어하는 동시에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한다. 만약 인생 1000세 시대가 열려도, 젊고 건강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1000세를 살아가는게 아니라 1000세까지의 노화를 겪으면서 1000년을 살아가게 된다면, 1000세까지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안티에이징, 디에이징 기술은 사실 노화를 약간 억제하거나 수준이다. 최근에 웰빙이 각광받고 있는 것도 노화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수명과 건강수명의 간극을 줄여줄 기술이 최근 논문을 통해 보고되었다. 물론, 당장 이 연구성과를 인간에게 적용하기는 무리지만, 굉장히 promising 하게 보인다. 바로 <역노화>에 관한 아래의 연구이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PNAS 2020년 11월호에는 상기의 논문이 실렸다. 논문의 내용은 PDK1이라는 단백질이 세포의 노화에 중요한 요소이고, 이를 억제하면 다시 세포가 <회춘>하게 된다는 것이다. 논문은 피부를 구성하는 세포의 한 종류인 섬유아세포에서 발현하는 PDK1 유전자가 세포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를 억제할 경우 세포가 회춘하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피부세포가 회춘한다고 해서 인간이 회춘하리라는 법은 없다. 임상실험에 돌입하여 성공하여도 피부만 젋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 중요한 점은 첫째, 다른 종류의 세포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분자생물학적 세포내 신호전달경로를 타겟으로 했기에 다른 종류의 세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점. 둘째, 각각의 세포를 유전자 조작 한 것이 아니고 약물을 처리하여 타겟 단백질인 PDK1을 억제했기 때문에, 약물 주입시 모든 세포에 동등하게 작용할 수 있어서 임상 적용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연구책임자인 조광현 교수는 티비에 출현하여, 10년내 역노화 기술이 인간 적용 가능하다고 했는데, 필자는 10년도 오히려 보수적으로 말한 것이라 생각한다. 연구팀은 이전이었으면 10년 넘게 걸릴 연구를 컴퓨터 시물레이션과 빅데이터 분석 기술로 짧은 기간 안에 해냈다. 물론 시물레이션 결과와 빅데이터 분석결과를 전통적인 분자생물학 기법으로 재검증을 했지만 전통적인 생물학 연구에 비해서 획기적으로 짧은 시간임은 분명하다. 최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독감, 메르스, 코로나 백신의 개발은 이전의 전통적인 개발사업이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빨라졌는데, 개발자가 이미 바이러스의 게놈이라는 빅데이터를 알고 있는 상태로 시작한 점 등 IT 기술의 도움이 크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완성됐었다. 그런데 완성된 인간 게놈은 너무너무 빅데이터였기에 당시로서는 그냥 인간의 유전정보를 획득한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고 이를 활용한 수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단편적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생물학이 IT 기술과, 특히 빅데이터 분석기술과 융합되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다. 이 논문에서만 봐도, Boolean network model, Ensemble model (엠셈블 아닙니다. 앙상블입니다) 등의 빅데이터 분석기술(생물학에서는 bioinformatics 라고 부른다)을 활용하여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는데, 전통적인 분자생물학적 실험기법들은 시뮬레이션 결과를 재확인하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마치 최신의 비접촉식 온도계로 체온을 측정한 후에도 왜인지 직접 손을 대보는 거처럼 말이다.
만약 인간이 120살까지 혹은 그 이상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구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필자는 여러번 이미 지구에 인간이 많기 때문에 출생율이 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얘기했지만, 인구수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관점으로 보면 출생율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있다. 바로 인구피라미드의 구조가 크게 바뀌는 것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도 인구피라미드를 역삼각형꼴로 바꾸게 되지만 인간의 수명이 증가하는 것도 인구피라미드를 역삼각형꼴로 바꾼다. 인간의 수명이 증가하는 것은 출생율이 떨어지는 것과 유사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는 인구부양문제와 연결된다. 현재의 사회제도와 기술수준으로는 많아지는 노년의 인구를 지탱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기계공학, 빅데이터에 의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인간이 일하지 않아도 인공지능과 기계공학이 창출하는 경제에 의해 GDP가 증가할 것인데, 이는 여분의 복지제도를 운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효율적으로 맞춤형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다. 필자는 복지제도나 지원제도 등이 항상 <탁상공론이다, 현실을 모른다, 퍼주기 지원이다, 맞춤형 지원해야지> 등으로 이슈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위정자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빈틈없이 꼼꼼하게 준비해도 모든 인간의 사정을 두루두루 살피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기술 만이 가능한 일이다.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인공지능이 복지제도를 운영하게 되면, 상기의 모든 이슈가 한번에 해결되고 보다 효율적인 복지제도의 운영이 가능해진다.
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여전히 문제다. 120살이 기준이라고 하였지만, 계속해서 건강수명을 늘어날 것이고 근미래에는 150살 200살이 넘을 것이다. 태어난 인구가 죽지 않고 계속 누적된다면 인구는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일정나이가 지날 경우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불임시술을 받아야 하거나, 범죄에 대한 처벌로 수명연장기술을 제한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올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긍정적이다. 자산을 투자하고 관리하는 일이 훨씬 용이해지고 장기투자에 따른 수익성 또한 유리하여 노후설계가 수월할 것이다. 더 오래 학습하고 경험하기 때문에 인간은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어떤 분야이건 간에 노하우의 축적으로 개인의 전문성은 극대화되어 근로소득도 증가할 것이다. 건강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상대적 노년의 인구가 증가하여 복지 및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려는 압력이 높아질 것이다.
어찌되었건 간에, 나는 젊으면서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 살고 싶다.
'저널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론 머스크의 Neural link 논문 (1) | 2021.05.11 |
---|---|
세포를 몸 속에서 마음대로 이동시킬 수 있다고? (3) | 2021.05.07 |
저널클럽-대자연의 접착제 - 홍합의 폴리도파민 (0) | 2021.04.20 |
젊은피 수혈하면 진짜로 젊어진다고? (2) | 2021.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