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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플라스틱 먹는 미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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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 지구에 존재한 건 겨우 150년밖에 되지 않았다.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엄청나게 긴 세월이지만, 지구의 관점으로 보면 순간에 불과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동안 이 세상을 온통 점령해 버리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이 글을 쓰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플라스틱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은 기계문명, 금속문명으로 정의되지만, 플라스틱 문명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기계로 인해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대로 접어든 이후, 플라스틱은 대량생산과 기가막히게 어울리는 최적의 소재로 자리잡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석유화학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가격마저도 낮아졌다. 플라스틱은 보존성이 좋지만,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일회용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필자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재활용 수거통 - 매일 이런 포대가 꽉 차 넘친다. 비닐라벨을 제거하지 않은 페트병이 눈에 띄어서 아쉽다. 

 

플라스틱은 보존성이 좋다. 다시 말해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는다. 저절로 분해되는데 1,000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플라스틱의 역사가 150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1,000년간 실제로 확인해 본 것도 아니다. 플라스틱도 유기화학물(탄소와 산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분자들)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플라스틱을 먹이로 하는 생물체가 존재하거나 진화적으로 탄생할 수도 있으니, 이렇게 플라스틱이 많아지면, 신생물이 탄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화적 시간과 지구적 시간 스케일로 일어나는 신생물 탄생은 그렇게 빨리 생길 수 없다. 

 

인간이 버리는 쓰레기는 어떤 형태로든 일부는 반드시 바다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소각을 해도 매립을 해도 긴 시간이 흐르면 많은 양이 바다로 유입된다. 바다 쓰레기의 80% 이상이 플라스틱이며, 이는 1년에 800만톤 정도이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플라스틱을 바다에서 제거해서 생태계를 복원하려면 최소 8조 6천억원의 비용이 필요할 거라고 한다(플라스틱 관련된 부분만 그 정도라는 것이다). 바다 물고기의 수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2050년이 되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고, 바다새와 물고기의 99%가 플라스틱을 먹이로 삼킬 것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플라스틱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고, 더 열심히 재활용하고, 대체품 소재의 개발에 힘쓰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해결 못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미세플라스틱이다.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재활용하기, 대체소재 사용을 하더라도, 새로 생기는 플라스틱 쓰레기만 줄어들 뿐, 이미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썩지 않고 여전히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을 뿐이다. 엄청난 돈과 자원을 투자해서 이를 회수할 수도 있겠지만, 미세플라스틱은 회수조차 할 수 없다. 

 

(좌) 아시아경제 뉴스에 나온 생선튀김조각 내의 미세 플라스틱, (우) 대변에서 검출된 미세플라스틱으로 추정한 인간의 1주일 플라스틱 추정량(신용카드 1개 분량)

 

며칠 전 아시아경제 뉴스에 따르면, 호주의 과학 콘텐츠 제작팀인 "원 민 마이크로"는 시판되는 생선 튀김을 얇게 썰어서 슬라이드 위에 놓고 관찰한 결과, 미세 플라스틱 조각을 확인했다. 유럽연합소화기학회에서는 사람 대변 샘플을 조사하여 참가자 전원의 대변에서 미세플라스틱을 검출하였다. 대변 10g 마다 평균 20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나왔고, 인간이 실제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있다는 것이 세계 최초로 보고된 것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사람은 1주일에 신용카드 1장 정도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고 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플라스틱은 유기화학물이다. 물을 제외한 인간이 먹고 마시고 배출하는 모든 것이 다 유기화학물이다. 이론적으로는 플라스틱도 물질대사의 사이클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몇 종류의 생물체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능력을 발견하였다. 2016년 일본연구진은 PET를 분해하는 미생물을 확인하였고, 이 미생물 내에서 어떤 효소가 PET를 분해하는지까지 확인했다. 영국에서는 같은 미생물의 돌연변이를 통해 더 플라스틱 분해성능이 좋은 생물을 보고하였고, 2014년 중국에서는 벌집의 밀랍을 먹는 왁스웜 벌레의 장내 미생물(즉 대장균) 이 폴리에틸렌을 분해한다고 보고했다. 2017년에는 영국과 스페인의 연구진이 꿀벌부채명나방과 애벌레가 폴리에틸렌을 빠르게 분해한다는 연구도 내놨는데 12시간 이내에 무려 92mg의 폴리에틸렌을 분해했다. 2015년 미국과 중국의 공동 연구진들이 밀웜의 장내미생물이 스티로폼인 폴리스티렌을 분해한다고 밝혔으나, 어떤 효소에 의한 것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뮤코 청양엔시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폴리카보네이트 계열의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다. 출처. 환경부

 

국내에서도 연구가 활발하다. 김경진 경북대 교수팀은 일본에서 발견된 미생물의 효소를 활성증가와 고온에서 작동하도록 변이효소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향범 전남대 교수팀은 신종 곰팡이인 "뮤코 청양엔시스"를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하고 인정받았다. 이 곰팡이는 주홍날개꽃매미의 표면에서 분리된 털곰팡이의 한 종류로, 폴리카보네이트 성분의 미세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미생물이 플라스틱이 지구에 출현한 150년 전에 최초로 출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 미생물들의 주식이 플라스틱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 좋은 영양분이 있다면 굳이 플라스틱을 먹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미생물들 내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효소를 밝혀낼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IoT, IoL 등의 초연결 사물인터넷, 만물인터넷, 5G 인터넷을 통해 유선보다 무선이 빠른 세상,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합성생물학, 마이크로바이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통한 유전체 교정, 3D 바이오프린팅이 4차 산업혁명의 대표주자이다. 상기에서 우리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종과 그 미생물이 어떤 효소로 플라스틱을 물질대사하는지 찾아냈다(몇 종에서만). 효소를 찾아냈다는 말은 그 효소를 코딩하고 있는 DNA 염기 서열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PCR 기술(코로나 바이러스 검사하는 바로 그 기술이다) 과 크리스퍼 가위 기술, 합성생물학을 사용하여 플라스틱을 대사하는 효소를 다른 미생물종에서 분비하게 만들 수 있고, 합성생물학으로 이를 대량생산할 수도 있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미생물을 배양하는 거대한 용기에, 플라스틱 폐기물을 넣어서 분해하는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처리할 수도 있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버리는 거지만, 미생물은 먹이를 먹는 셈이다. 미세플라스틱이 많은 곳에 살포하여 미세플라스틱을 제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이 연구가 몹시 마렵다. 필자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도, 유전자 가위 기술도, 미생물 배양기술도 모두 연구과정에서 경험해보고 실제로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한국연구재단은 경력자를 우대? 하는 경향이 있어서, 줄기세포와 3D 바이오프린팅 연구만 하던 필자가 갑자기 유전자 조작, 합성생물학 연구를 한다고 하면 연구비를 주지 않을 거 같다. 어떤 훌륭하신 과학자가 공동연구를 제안하거나, 연구비를 준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적극적으로 수행할 의지는 충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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