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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날씬이 유전자 GR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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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분자생물학을 처음 접했을 때, Lectin 이라는 유전자가 있었다. 생쥐에서 Lectin 유전자가 망가지면 비만 쥐가 된다. 이 발견이 논문으로 나오자 비만은 Lectin 유전자 때문이라며, 비만을 유전자 치료로 고치겠다며 의학계와 생물학계에 난리가 났었다. 

 

그런데 아주 많은 다른 유전자들의 경우와는 다르게, 인간의 Lectin 유전자는 인간의 비만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생쥐도 아마 마찬가지겠지만, 실험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상태여서 실험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인간은 Lectin이 아주 약간의 영향을 끼쳤을 뿐이었다. 

 

현재 이렇게 비만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는 총 16종이 보고되어 있는데, 이 16종이 모두 궁합이 맞아야 비만이 되는데 비만 인구는 16종의 유전자가 조합될 확률보다 훨씬 많다. 식탐에 대한 심리적인 요인이 유전자 말고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7월 1일에 Science 지에 나왔으니 정말 최근이다) 리제네론 유전자 센터의 연구팀은 자그만치 64만명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비만 유전자를 찾아내려 했다. 몇 가지의 유전자군이 나왔지만 GRP75 유전자가 가장 BMI(체질량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정상일 때, 뚱뚱할 확률이 높고,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나타났을 때 체중이 더 가벼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불활성화된 사람들은 평균체중이 5.4kg 더 가볍고, 비만의 위험성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GRP75의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사람들은 사실 아주 드물어서, 겨우 3천명의 1명꼴이다. 3천명중에 1명은 이 유전자가 불활성화되어 있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요즘 유투브에 나오는 먹방 BJ 들 중에서 먹는 양에 비해서 이상하게 날씬한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도 이런 유형일 가능성이 크다. 

 

고장난 유전자를 고치거나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유전자 치료는 상대적으로 어렵지만, 어떤 유전자 하나를 불활성화 시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훨씬 쉬운 기술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정상 GPR75 유전자를 불활성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술로는 RNAi 기술이 있는데, 이 기술의 대가는 우리나라에 있다. 서울대학교의 김빛내치 교수이다. RNAi는 어떤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20시퀀스 정도의 짧은 RNA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해당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한다. 

또하나 가능한 기술은 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이다. 이 분야에는 대가가 많은데, 그 중에 우리나라에도 대가가 있다. 툴젠의 창업자이자 서울대 교수인 김진수 교수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새 유전자를 들여오는 복잡한 과정이 있는데, 유전자 하나를 망가트리기 위해서는 유전자 가위로 가위질 한번만 해주면 되니 상대적으로 쉬운 기술이다. 다만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하면 유전자가 영구히 망가지고, RNAi를 사용하면 일시적으로만 억제된다. 

 

보통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으로 밝혀진 사실들이, 인간에 적용하려 하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에서 신약개발로 가능성 있다고 알려진 것들 중 실제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은 10,000개 중에 1개 꼴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GPR75 유전자에 대한 내용은 처음부터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밝혀졌고, 무려 64만명을 조사한 것이라 필자가 보기에는 굉장히 가능성이 높다. GPR75의 RNAi 시퀀스를 제작하거나, 유전자의 점돌연변이인 SNP를 유발하는 CRISPR 유전자 가위를 만드는 일은 능력있는 분자생물학자라면 한두주 내에 가능한 일이다. 조만간 유전자 치료로 비만을 치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실은 필자도 GPR75는 아니지만, 이렇게 드문 종류의 유전적 돌연변이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것에 대한 포스팅도 조만간 다루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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