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강
지난번 포스팅에서 흡연이 건강에 안 좋은 점을 적었다. 사실 흡연은 온 몸의 장기에 골고루 안 좋지만 호흡기, 특히 폐에 집중했는데 가장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알콜은 외부에서 침입한 독이기 때문에 해독작용을 담당하는 간에 가장 영향이 커서 간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알콜은 혈액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지기 때문에 구석구석 온 몸의 장기에 골고루 안 좋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만성 간질환 환자의 15-20%가 알코올성 간질환에 의한 것으로 조사되어 전체 만성 간질환의 2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통계 조사에 대한 의혹이 존재하는데,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의 상당수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지 않거나, 동네의원에서 치료를 받거나(통계에 잡히지 않을), 하기 때문에 실제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의 빈도가 실제보다 더 적게 조사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루 한잔의 술은 약이 된다라는 둥의 말을 하곤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들은 특별한 술(복분자주, 벌떡주, 와인 등)의 특별한 성분이 건강에 좋은 무슨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전형적인 <확대해석의 오류>이다. 물론 그 성분이 그 효능을 가지고 있겠지만, 술은 여러 가지 성분의 혼합물이며 물과 알콜이 주성분으로 그 성분은 아주 적은 비율로만 존재한다. 이중에서 모든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이 바로 술을 술로 정의하는 이유이자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이다.
프랑스인들의 와인사랑은 대단하다. 와인을 먹으면 심혈관질환이 예방되고, 비만도 예방된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와인을 마시기 때문에 뚱뚱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짓말까지 서슴치 않는다. 만약 뚱뚱한 프랑스인을 제시한다면, 그 사람은 예외적으로 와인을 마시지 않는 사람일 것이라고 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프랑스는 개인의 와인 구입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와인 배급제를 실시하였다(이 와중에 와인을 배급했다는게 대단하긴 하다). 평소에 물처럼 마셔대던 와인을 제한하니 와인소비량이 줄게 되었는데, 이와 함께 프랑스에서 간경변증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이전보다 80% 감소하였다. 이후 법적 규제가 풀리자 간경병증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추세가 관찰되었는데, 1920년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지면서 간경변증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였다가, 1932년에 금주령이 폐지되면서 다시 증가하였고, 1950년대에는 술값이 저렴해지면서 술 소비가 늘어나자 간경병증으로 인한 사망자의 수도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습관적으로 음주를 하는 사람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사실 100%일 것이다)은 알코올성 지방간을 갖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 주변에서 적어도 한두 사람 지방간 후보자가 떠오를 것이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발전하여 알코올성 간염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고, 이어서 알코올성 간경변증으로 발전한다. 여기에서 더 심해질 경우 간에 종양이 발생한다.
알코올성 치매는 간질환에 비해서는 그 수가 적지만,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술먹고 필름이 끊어져본 경험이 있다면 알코올성 치매를 조심해야 한다. 뇌의 일부가 약간의 손상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 현상이 반복되다 보면 영구적인 손상이 되어 버릴 수 있다.
필자가 이 포스팅을 시작할 때 우리나라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단연코 세계1위라고 상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임을 알았다. 과거에는 국민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선두를 다투었는데(압도적인 선두가 아니라 엎치락 뒤치락했다는 말이다), 가장 최근의 조사(2018년)로는 OECD 국가 중에서 23위에 해당해서 별로 높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건강을 위해서 참 다행이다.
2. 숙취
숙취는 혈액내 알콜이 많이 분해되어 아세트알데히드가 생기면 발생한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알콜이 분해되어 생기는 물질로서 두통 등 강력한 숙취를 유발한다. 아세트알데히드도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기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면, 취한 후에 숙취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동양인들)에서 30-50%정도가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효소의 기능이 선천적으로(유전적으로) 떨어져 있다. 전국민의 최소 1/3에서 1/2이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데, 한때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1위였다니 참.....
필자 역시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 기능 저하가 확실하다. 주량은 제법 세지만, 숙취는 대단하다. 한번 술을 마쉬고 숙취고 찾아오면 하루가 아니라 2-3일을 고생한다. 해장국을 먹어도 술 깨는 약을 먹어도 도리가 없다. 추가적인 간손상을 감수하고서 타이레놀을 먹으면 그때서야 진정된다. 이런 경우에는 술을 마시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술을 피하게 되므로, 알코올성 간질환 등 술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드문... 응?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하지?
필자는 수영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술을 마신 경우 다음날 느낌으로는 술이 다 깬 거 같다고 느껴도 수영을 했을 때 50m 기준 기록이 무려 4-5초 가량 차이가 났고, 일주일 후에도 2초 가량 차이가 났다. 숙취가 끝나더라도 완전히 컨디션이 회복되기까지 일주일 이상이 걸리는 것이다.
3. 심신 미약
술은 육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헤친다. 술은 심신미약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신미약을 범죄자의 감형의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심신미약에 거부감이 크지만, 술이 심신을 미약하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필자는 알코올에 의한 심신미약이 감형으로 이어지는 것을 절대 반대한다). 술이 심신미약으로 인한 범죄를 유발한다면, 심신미약으로 감형해주는게 아니라, 술을 금지시키거나 술을 복용하는 행위가 양형시 가중처벌의 요소가 되어야 맞다.
실제로 음주는 간질환, 식도염, 위염, 위궤양, 췌장염, 설사, 흡수장애, 부정맥, 심장마비, 심금병증, 골다공증, 골절, 근육위축, 알코올성 치매 등의 육체적 질병 뿐만 아니라, 폭력, 이혼, 실직, 성폭력, 면허정지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이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문제가 심각하다.
몇 년 전에 <주폭>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술만 마시면 폭력 등 주변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술먹고 실수한 거지 정도로 넘어가던 것을 엄격하게 처벌하겠다는 뜻으로 출현한 단어인데, 음주운전의 처벌이 강화되는 등 실제로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는 거 같다.
4. 음주운전
음주운전은 특별히 더 나쁘다. 다른 주폭들은 대계가 주변인들에게만 그 피해를 주는 반면 음주운전은 불특정다수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생사람 잡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2018년에 집계된 교통사고는 총 217,148건인데, 이 중 사망자는 3,781명이다. 이 중에서 음주 교통사고는 19,381건이고, 음주 교통사고의 사망자는 346명이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9.2%가 음주사고로 사망하는 것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중 음주사고 사망자의 비율이 2008년에는 16.5%였으니 상당히 많이 감소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10%가 음주사고로 사망한다. 한번 생각해 봐라. 음주운전을 없애버림으로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10%나 감소할 수 있다면, 민식이법이나 일반도로제한속도 규정법 등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이상적인 정책 아닌가?
술이 나쁘다고 해서 세상에 술을 다 없애 버려야 한다는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은 하지 않겠다. 필자 역시 만만찮게 음주를 즐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음주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는 것이다. 미성년자의 음주가 불법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은 본인의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확실히 인지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필자는 포스팅을 위해 인맥 안에서 나름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번에도 3명의 학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재미있게도 술의 문제점에는 공감하시면서도, 모두 술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쓰는 걸 싫어하셨고, 만약 술을 금지시킬 경우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도 적극적으로 어필하시기도 했다. 비즈니스와 사회생활이 경직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관련사업이 위축되어 경제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술을 금지시킬 경우 출산율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응?) 의견도 있었다. 필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단 한번도, 술을 완전 금지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필자는 술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의견이 담배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의견과는 완전히 다른 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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