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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수사와 P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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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는 매우 작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세포핵은 더 작다. 그 안에는 DNA가 3,095,693,981 basepair나 들어가 있다. 당연히 DNA의 크기는 매우 작아서 현미경으로도 관찰이 불가능하다. 만약 DNA가 현미경으로 관찰이 가능했다면, 왓슨과 크릭, 그리고 프랭클린이 DNA의 구조를 규명하기 위하여 그토록 노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설탕이나 소금 입자가 1개만 있는 경우 보기도 어렵고 어떤 물질인지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나 설탕이나 소금이 한봉지가 있다면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DNA도 마찬가지이다. DNA는 매우 작기 때문에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DNA를 증폭하여 수만배로 늘린다면 손쉽게 DNA를 확인할 수 있다. 

 

DNA를 증폭하여 수만배로 늘리는 기술. 그것이 PCR 이다. Polymerase Chain Reaction ; 우리말로는 중합효소 연쇄반응 이라고 한다. 증폭된 DNA는 쉽게 검출하여 분석하고 여러가지 검사를 실행해낼 수 있어서 현대 분자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코로나 19 시국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세포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에 훨씬 적은 수의 핵산을 가지고 있어 확인이 어려운데, 병리학자들은 PCR 검사로 증폭시켜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확인한다. 

 

PCR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Thermophilus aquaticus 라는 미생물의 DNA 중합효소인 Taq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분열시 DNA를 복사해내야 하기 때문에 DNA 중합효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생체에서는 다양한 효소들이 DNA 의 이중가닥을 단일가닥으로 분리한 뒤에 DNA를 중합해내지만, 이를 실험실에서 재현하기 위해서는, 이중가닥을 단일가닥으로 분리하기 위하여 샘플을 90이상으로 가열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열할 경우 DNA 중합효소는 단백질이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변성되고 만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단백질은 37℃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42℃ 이상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Thermophilus aquaticus 라는 미생물은 극호열균에 해당하는 미생물로서, 온천이나 화산지대의 열수분출공에 사는 세균이다. 때문에 열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하였고 DNA 중합효소 역시 고온의 단백질 변성조건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PCR의 원리. DNA를 95℃로 가열하여 단일가닥으로 분리하는데 이를 Denaturation 이라고 부른다. 이후 Primer라고 불리는 15-25bp 크기의 단일가닥 DNA를 첨가해주는데 이 반응은 50~65℃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후 약 70℃에서 DNA를 신장시키는 Extension 과정을 진행하면 1사이클이 끝나고 1개의 DNA는 똑같은 2조각이 된다. 보통 PCR에서는 이 과정을 최소 20 사이클 정도 반복한다. 1개의 DNA 조각은 2의 19승개의 조각이 된다.

PCRDNA의 조각 수를 엄청난 수로 불려주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손쉽게 염기서열을 확인할 수가 있다. Genome project의 결과처럼 우리는 PCR을 통해 어떤 DNA가 어떤 염기서열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인간의 DNA200bp 마다 1bp 씩 차이가 나는데, PCR을 이용하여 DNA를 증폭하면 이러한 차이 혹은 일치를 손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이 때문에 PCR은 인간의 일치 확인 여부를 위해 많이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친자확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과학수사 분야에서는 증거물에서 발견한 DNA 와 용의자의 DNAPCR을 통해 증폭한 뒤에 비교분석하여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DNA는 상보적 결합을 통한 이중나선 덕분에 그 구조가 상당히 안정적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샘플에서도 DNA는 매우 잘 보존되어 있어서, PCR이 가능하다. 최근 미제사건수사를 진행중인 경찰은 오래된 증거에 묻어 있는 혈흔등의 증거를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에 다시 분석하기도 한다. PCR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도 불가능한 검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1986~ 1991 년에 걸쳐서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반경 2km 이내에서 일어난 성폭행과 결합된 연쇄살인 사건을 [화성연쇄살인사건] 이라고 부른다. 20191217일 경찰의 범인 신상공개가 이루어짐으로서 공식적인 사건 명칭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변경되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 사건으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이형호군 유괴살인사건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제사건이었다. 다만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경우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증거가 굉장히 많아 1980년대에 과학수사가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후 14건의 성범죄와 강도 등 9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2020년에 만료되었고 이를 통해 진범인 이춘재는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이춘재의 범죄는 총 30여건에 달하기 때문에, 다른 범죄로 이미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고,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가석방을 차단하여 사회와 격리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197월 새로 개발된 잔사 DNA 증폭 및 복원 기술로 (PCR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다) 오랜 시간 보관해 오던 증거물에서 DNA를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형태의 연쇄살인은 중독성이 있는데 1991년 이후로 범죄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러 프로파일러들은 범인이 다른 범죄로 복역중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였다.

 

따라서, PCR을 활용한 기술로 오래된 증거물에서 얻은 DNA 와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하자 일치 판정이 떴는데, 바로 이춘재였다. 이춘재는 1994년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서 복역중이었다.

 

이춘재의 DNA가 발견된 사건은 총 10개의 연쇄살인 중 3, 4, 5, 7, 9차 사건이었다. 1차 사건은 남아있는 증거물이 아예 없었고, 6차 사건 때는 폭우가 내려 증거가 모두 훼손되었다. 10차 사건에서는 보관된 증거가 있었으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8차 사건이었다. 8차 사건은 당시 윤씨가 범인으로 몰려 최근까지도 복역을 했었고, 경찰은 진범이 잡혔다고 판단하여 증거물을 보관하지도 않았다. 이에 따라 8차 사건은 DNA 증거 없이 이춘재의 자백에 의존하여 이춘재가 진범임을 확정하였다. 다만 이춘재가 범인만 알 수 있는 사실들을 증언했기 때문에 확실히 윤씨는 억울하게 복역한 것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 형사들이 용의자를 고문, 폭행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이는 동시대를 다룬 영화들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다. 실제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다가, 19881월에 명모군이 고문구타로 인해 뇌사사망하였고, 앞서 말한 윤모씨는 고문과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거짓자백을 하여 20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199011월 차모씨는 수차례의 조사(이 과정에서 고문구타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후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고, 199012월 김모군도 폭행과 가혹행위로 인해 정신분열을 일으켰다. 19914월에도 33살의 장모씨가 폭행과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1993년 김모씨도 물고문을 당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이춘재에게 직접 피해를 당한 피해자 외에도 용의자로 몰려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과 구타를 당했고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등 극심한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하지만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대한민국의 과학수사가 도입되고 정착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고 있으며, 결국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자체도 해결하였다.

 

2006년 서울 서초구에서 프랑스인 주부에 의해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시 사건 내막을 모르던 남편이 냉동실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영아 시체 2구를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다. 신고 5일 후 이미 DNA 분석을 마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건을 신고한 남편이 영아들의 친부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부인이 친모임을 밝혀냈다. 당시 프랑스인 부부는 신고 5일 이전에 재빨리 프랑스로 출국한 후 한국의 과학수사는 신빙성이 없다면서 부인했으나,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진행한 DNA 검사 결과는 우리나라의 검사와 정확하게 일치하여, 우리나라의 과학수사 능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수사를 진행한 결과, 범인인 베로니크는 프랑스에서도 아이를 낳아 벽난로에 집어넣어 유기했었던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고, 임신 거부증을 앓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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