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혔다.
최악의 인간관계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대표님하고 의견이 다소 안 맞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대표님하고 서로 일치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는데, 이는 [회사에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방법] 이다.
일전에 그만둔 직원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회사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줬는데, 무시당했다. 임원진이 보는 눈이 없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 직원이 남긴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뭔지 알아챘다. 내 기억으로는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을 되돌려서 저 직원이 아이디어를 남긴 시점으로 되돌아가도 나는 그 아이디어를 적용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대표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아이디어는 기가 막히지 않았고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육하원칙이 없었다. 재미있는 생각이긴 했는데 그걸로 회사에서 뭘 어떻게 한단 소리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둘째, 사업성에 관한 고려가 없었다. 장황한 미래의 이야기일 뿐 이를 어떻게 적용하여 회사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의 내용이 전혀 없엇다. 어쩌면 그런 부분은 임원진이 알아서 해야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셋째, 프리젠테이션에 성의가 없었다. 파워포인트 파일을 만드는 것이 번거롭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만큼 아이디어를 잘 전달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작성하고 만드는 것이다. 마치 면담을 요청하듯이 와서 '스스로의 생각에 심취'하여 하는 말은 누구라도 알아듣기가 어렵다.
넷째, 핵심이 여러개 있었다. 아이디어의 핵심을 표현하는 것을 잘 못했다. 필자는 두괄식 의사전달을 좋아한다. 결론을 얘기하고 나서 보충설명을 하는 방법인데, 이 상황에서 화자는 결론을 제일 뒤에서 얘기하고자 한 거 같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명목하에 장황한 서사를 원한거 같은데, 아이디어가 훌륭하고 좋아도 감정적인 측면에서 이미 점수를 깍고 들어간다.
다섯째, 회의를 소집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항상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여러사람을 설득하고 의견을 모으려면, 미리 어떤 자리에서 어떤 얘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아젠다를 제시하여 상대방이 거기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나서, 설득을 해야 효과적일 것이다.
여섯째, 다른 사람이 이미 적용해본 아이디어는 아닐까? 를 놓쳤다. 이 부분은 당연히 놓치기 쉽다. 필자도 놓치곤 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 회사에서 누군가 시도해본 적이 있었고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런 경우 사전에 아젠다를 제안했으면 불필요한 대화를 나눌 필요조차 없었을 터이다.
세상에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기본을 지켜나가는 것 역시 매우 어렵다. 본인의 개성과 성격에 거스르는 일상적인 원칙을 지켜나가는 거 또한 정말 어렵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부분들을 기어코 지켜내고야 만다.
대부분의 우리는 성공하는 방법을 몰라서 성공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몇몇 특수한 체질을 제외하면 미용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여 피부가 안 좋거나 머릿결이 안 좋은 사람은 거의 없다. 다이어트를 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성공하는 방법, 절약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본성, 어쩌면 대자연의 섭리를 거슬러야 하는 고통을 극복해야만 한다.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방법 역시 다르지 않다. 홀로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그것은 큰 성공에서 1%의 지분조차 없다.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설득하고 효과적으로 프리젠테이션하는 것, 그리고 실행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부분은 아이디어를 제대로 구체화시키고 설득하는 거조차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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