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과학계 지원은 충분하며 기타 나라들과 비교하여 보면 오히려 많은 축에 속한다 (본편 1,2탄 참조). 대학들의 레벨 역시 다소 뒤쳐지는 모양새이기는 해도 노벨과학상을 한명도 못 받을 정도는 아니다 (본편 3탄 참조). 경제적인 변수는 전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적인 문제이거나, 과학계 내부의 문제일 것이다.
문제가 뭘까 알아보기 위해 언론 자료를 뒤져 노벨상 수상자들의 인터뷰를 추려봤다.
198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후버는 "연구자에게 완전한 자율성을 주는게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로버트 후버 뿐만이 국내의 노벨과학상 수상이 유력한 연구자들, 특히 현택환 교수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다.
200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노요리 요지는 "노벨상은 올림픽이나 월드컵과는 달라 과학자에게 운동선수처럼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라고 했다. 이는 국내외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정부정책은 단기간의 성과와 경제성을 담보하는 연구를 요구한다.
2016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오스미 요시노리는 "기초과학 연구가 가져올 가능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라고 했다. 응용과학보다는 기초과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응용과학과 기초과학은 모두 중요하지만 응용과학은 기초과학의 토대 위에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는데에 있어서는 기초과학이 중요한 게 틀림없다.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쿠르트 뷔트리히 교수의 인터뷰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국내 방송사인 SBS와 인터뷰를 했기 떄문에 SBS에서 우리가 궁금한 걸 직접적으로 많이 질문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노벨상을 과학자들에게 압박한다" 라면서 2001년 노요리 요지와 비슷한 말을 했다. 또한 "기초과학 분야는 최소 10년 이상의 단위로 발전하고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평균 31.4년이 걸리는 연구를 통해서 노벨과학상을 수상하기 때문에,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투자와 지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 연구자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이 부족한 편인데, 이는 보수적인 연구실 문화 때문"이라고 했다.
여러 인터뷰들을 종합하여 보면,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자율성이 부족하며, 큰 압박을 받고 있고, 기초과학이 도외시 되고 있으며 꾸준한 투자와 지원을 못 받고 있는 거 같고, 도전의식이 부족하다. 이는 지난 2016년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기사문 "South Korea`s Nobel Dream" 에서 지적한 바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기사에서 네이쳐지는 "한국은 과학연구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깨닫기보다는 돈으로 승부를 보려한다. 연구비 지원 정책이 응용과학에 치우처져 있고, 지원 자체가 유행에 따라간다."고 지적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인터뷰와 확실히 통하는 데가 있다. 필자가 노벨과학상을 바라볼 정도의 과학자는 아니지만, 인터뷰들과 네이처지의 글은 저절로 고개를 끄떡거리게 만드는 데가 있다.
국가의 정책이 노벨과학상 수상에 유리한 기초과학보다는 응용과학에 치우처져 있으며, 유행을 쫒는다는 근거를 찾기 위해 한국연구재단에서 다운받는 연구비 지원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필자도 여러번 작성해본 경험이 있는 이런 연구계획서들은 대체로 지원사업 및 연구제목만 다를 뿐 동일한 양식을 사용한다.
한국연구재단을 통해서 eRND에 국가과제 지원서를 올려본 과학자들은 아주 눈에 익을 것이다. 이런 양식의 연구계획서 이외에도 개인정보 확인 동의서, 청렴서약서, 연구업적 확인 서류(연구책임자의 논문이나 특허 등의 연구업적) 등을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가장 먼저는 연구비, 기간, 제목 등 형식적으로 찾아서 넣으면 되는 부분이라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가장 먼저 기입할 내용은 "1. 연구개발과제의 중요성" 이다. 작성 요령을 살펴보자. 국가/산업의 미래 원천 기술 확보 및 응용연구 연계가 가능한 성과창출 이라는 부분이 있다. 응용 연구 연계가 가능한 성과창출에 대해서 적어야만 한다. 또한 연구성과의 기술, 경제, 사회적 파급효과와 국가 과학기술 전략분야 기여도 등을 적으라고 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라는 소리다.
두번째로는 "연구개발과제의 목표"를 적어야 한다. 이 부분은 표를 이용해서 작성해야 한다. 최종목표와 세부목표, 단계별 연차별 목표까지 자세하게 적게 되어 있으며, 매년 목표를 달성했는지, 몇 %나 달성했는지 상세하게 기재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 이 표에 작성한 기준에 따라서 연구자는 매년 본인의 성과를 평가받아야 한다. 필자는 매년 이러한 보고서를 최소 3편씩 작성하는데, 매년 100%를 채우지 못하여 아주 곤혹스럽고 고통스럽다. 매년 12월에서 2월까지는 필자의 연구역량의 80% 이상이 이런 서류 작성에 투입된다. 아마 노벨상 수상에 근접한 국내 대가들의 경우 연구비가 많은 만큼, 필자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서류작업이 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의 인터뷰 중에 "노벨상은 올림픽이나 월드컵과는 달라 과학자에게 운동선수처럼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세번째로 적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 역시도 거의 표와 수식을 사용하여 작성한다. 이 부부을 작성하고 있다 보면,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작성하는 것이 아닌, 기업이 매년 작성하는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노벨상 수상자의 인터뷰 중에 "연구자에게 완전한 자율성을 주는게 중요하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달 한달 단위로 연구일정과 계획을 세밀하게 작성해놓고 매년 이를 제대로 준수했는지를 보고서 형태로 제출하게 되는데, 일정이 틀리거나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변경사항에 대한 내용을 다시 작성해야만 한다. 연구결과에 따라서, 연구동향에 따라서 자유롭게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네번쨰로 적어야 하는 부분인 "연구개발성과의 활용방안 및 기대효과" 부분이다. 필자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연구를 수행하면서 기업화, 추가연구, 기술이전까지 염두에 두고 연구를 진행한들 이를 진행할 전문성이 과학자에게 있을까? 연구자 입장에서 기대되는 성과를 경제 산업적 측면과 산업적 측면을 구분하여 기술하게끔 한들 이 부분을 제대로 고찰하여 작성할 전문성이 과학자에게 있을까? 필자가 훌륭한 과학자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필자로서는 매번 아주 곤혹스럽기 그지 없다. 특히, 경제 산업적 측면을 적으면서 이 기술이 완성되었을 때, 어떤 경로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해서 얼마만큼의 돈을 벌고 국가경제에 얼마나 이바지하겠다고 적고 있을 때면, 이를 토대로 평가받을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평가를 토대로 연구비를 받는 것을 고려하면, 어느 새 기초과학은 잊혀지고 응용과학에만 집중한다. 최신 유행하는 기술과 돈 되는 기술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후에도 많은 부분을 작성해야 하지만, 연구내용을 적는 부분은 여기까지이다. 이렇게 보면 아주 짧은 계획서를 작성하는 거 같지만 작은 연구비의 경우에도 30페이지, 많은 경우에는 2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적어야 한다 (적정 분량을 제시해 준다).
물론 연구비를 편성하고 운용하는 공무원들은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궁리하고 양식을 만들었을 테고, 심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을 것이지만, 위의 양식이 노벨상 수상자들이 강조하는 내용과 결이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의 지원금은 충분할 지언정 지원방향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평균 노벨상을 수상하는 연구를 완성하기까지 31.4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양식은 2021년 나온 연구비 중 가장 큰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5년짜리 연구과제이다. 31.4년 동안 꾸준히 연구비 걱정 없이 연구할 만한 환경은...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필자는 제법 연구비를 많이 따서 동년배의 박사들에게는 부러움을 받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여태 3년이 넘는 과제를 따본적이 없다. 어떠한 연구를 3년 안에 완성하는 것은 보통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말이 너무 많지만....... 노벨상하고는 별 관련이 없기에 참도록 하겠다.
하지만 분명히 정부 측에서도 이런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IBS 연구단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는 "Institute for basic science" 의 준말로 쉽게 말해 기초과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연구단으로서 한해에 100억이 넘는 연구비를 지원받는 엄청난 곳이다. 이를 만든 목표중의 하나가 바로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에 있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한다. 실제로 IBS 를 리드하는 연구단장님들은 흔히 말하는 "노벨 클래스"에 오른 사람들, 즉, 노벨상을 받을만한 사람들이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과학자들에게 한해 100억 넘는 예산을 주며, 기초과학을 연구하게 한다는 발상 자체는 형평성 문제등 다소 잡음이 있지만, 훌륭한 생각이다. 하지만 얼마전 IBS 연구단의 하나인 나노입자 연구단의 현택환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니 IBS 연구단 마저도 막대한 예산에 동반되는 행정업무와 보고서, 몇 번의 감사 등 자율성이 크지는 않아 보인다. 필자의 연구업적 중 가장 큰 논문 3편 모두에 현택환 교수님 논문이 참고문헌으로 들어가 있기에 이 분 논문을 거의 모두 다 읽어 보았다. 논문을 읽어보면 과연 노벨과학상에 근접한 사람이라는게 느껴진다. 이런 분이 연구에만 전념할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니 (비록 연구비는 많이 주지만). 문득 2016년 네이처지의 지적이 다시 떠오른다. "한국은 과학연구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깨닫기보다는 돈으로 승부를 보려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부의 연구비 규모가 절대 모자르지는 않지만,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는 않은 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정책이라는 것 역시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문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좀 더 연구하시고 좀 더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고 제시해 주셨으면 한다. 오늘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펄쳐 보았다. 정말 할 말이 많은데, 줄이느라고 아주 곤혹스러웠다. 다음시간에는 노벨상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과학계 내부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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