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지에 내가 적은 논문이 등재된다는 것.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명예이지만, 이것이 가져다주는 실익도 대단하다. 이것이 연구업적이 되어 복잡한 기준으로 환산되어 점수가 되고, 연구비를 타거나 과학 분야에 취업을 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학술지는 대부분, "피어리뷰" 시스템을 통하여 제출된 논문을 심사하여 논문을 실어주거나 거부한다. 필자가 현재까지 적은 24편의 논문들은 모두 다 이 "피어리뷰" 시스템을 통과하여 게재되었다. 피어리뷰 시스템이란 학술지의 편집인들이 전문가의 조언을 얻는 시스템을 일컫는데, 논문 게재여부의 결정권은 편집인들에게 있으나, 피어리뷰가 실질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피어리뷰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동료심사 라는 점이다. 대부분 서로 일면식도 없고, 피어리뷰 과정에서 금전이 오고가지도 않지만, 이상하게도 리뷰어로 선정되면 굉장히 열심히 리뷰를 한다. 다른 사람의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연구결과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나름의 투철한 사명감이 작용하기도 한다. 필자가 처음으로 제출한 논문의 피어리뷰를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런 고약한 과학자들같으니" 였다.
심술이 난 상태에서 논문을 수정하고 답변을 작성하려니 당연히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추후에 필자의 답변을 본 한 교수님은 "고집이 가득하며 리뷰어를 향해 '무슨 *소리냐'" 라고 말하는 거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논문은 학술지측으로부터 거절당했다.
같은 논문을 다른 학술지에 투고한 후, 다시 피어리뷰를 받았을 때는, 동료심사자들을 최대한으로 존중하며, 예의를 지켜 논문을 수정하고 답변을 작성했다. 그랬더니 논문은 본래의 스토리를 잃고 산으로 가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학술지측으로부터 거절당했다. 도저히 안 되겠던지, 또 다른 학술지에 투고한 후에는, 교신저자이신 교수님께서 피어리뷰에 대한 대응을 하셨는데, 놀랍게도 한번에 통과된 후에 게재 확정되었다.
10년도 넘은 일인데 이 때 피어리뷰 대응을 해 주신 교수님께서 작성하셨던 답변서를 필자는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필자가 향후 대응해야할 답변을 작성할 때 교과서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른 시간에 한 편의 논문이 피말리는 피어리뷰를 통과하여 게재확정되었는데, 딥변서를 그럭저럭 잘 작성하였던지, 단 한번의 리비전으로 통과되었다. 다시 한번 그 때 그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그래서 피어리뷰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냔 말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참 곤혹스럽다. 정답 따위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첫째, 필자가 처음에 했던 실수처럼 감정을 싣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애정을 갖고 진행해 온 연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리가 없지만, 고집부리고 짜증부려봤자 본인만 손해다. 절대로 혼자서 연구할 수 없는 현대 연구의 특성상 본인만의 손해가 아닌 함께 수고해준 연구진 전체에 큰 피해를 끼치게 된다.
둘째, 약간의 아부도 필요하다. "우리는 너의 코멘트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너의 코멘트를 반영하였더니 나의 논문이 훨씬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따위의 문구 말이다.
셋째, 소신은 지키자. 약간의 아부라는 것은 양념일 뿐이다. 본인의 연구방향이 산으로 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피어리뷰어가 한명이 아니라 두세명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다 들어주려다 보면 논문이 산으로 간다. 연구를 하면서 다른 문헌 연구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면,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경우 분명 통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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