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리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가끔 음식이나 이물질이 기도쪽으로 넘어갔을 때 하는 응급처치를 하임리히 법 혹은 하임리히 용법이라고 하는데 이것과는 다른 것이다. 하임리히 용법은 흉부외과 의사인 헨리 하임리히의 이름을 딴 것이고, 하임리히의 법칙은 허버트 윌리엄 하임리히의 이름을 딴 것이다. 둘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지만, 하필이면 사고에 대한 대처법과 예방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하임리히의 법칙이란 안전사고에 대한 법칙이다. 또 다른 말로는 1:29:300의 법칙이라고 한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십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 따라서 과학적 기작이 있는 법칙이라기 보다는 사례들이 축적되어 생긴 법칙이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펴낸 책인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법칙이다. 발생한 산업재해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1명의 사망자가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이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그 전에 부상을 당할 뻔한 경험자가 300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비율이 1:29:300 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사소한 사고에 주의를 기울이면, 작은 재해와 큰 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 큰 재해가 발생하면 그 때서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듯이 하는 문화는 정말 잘못된 것일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잘못된 거지만, 사소한 사고들은 그냥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고, 작은 재해가 일어나면 아직 심각성을 못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큰 재해가 발생했는데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있었는데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일로 총 180명이 사표를 제출했고,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고 박원순 시장은 무조건 책임을 지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런데 2009년 길동역에서도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난 적이 있고, 구의역 사고 이후 2016년 10월에도 방화역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사고가 발생한 공간과 시간이 각각 다르니 하인리히의 법칙이 적용이 안 되는 것인가? 아니면 작업자와 승객으로 사고를 당한 사람이 다르니 하인리히의 법칙이 적용이 안 되는 것인가?
하인리히의 법칙은 작은 사고들이 일어난 후에 큰 사고가 반드시 일어날 거라는 무시무시한 예언같은 것이 아니다. 작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경각심을 가지고 큰 사고를 막으라는 것이다. 당연히 큰 사고가 일어나면 더 큰 경각심을 가지고 재차 발생할 큰 사고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성난 시민과 여론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많이 보지만, 그 기간이 지나가면 슬그머니 원래의 안전불감증 사고로 돌아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2016년 5월 구의역 사고 이후 2016년 10월 방화역에서 사고가 났을 때도 경찰은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전형적인 인재"로 결론지었다. 불과 5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사고를 겪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실수와 사고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없을 것이고 지혜로운 인간은 실수와 사고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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