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리저리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혈액부족사태"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 처음에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자가 헌혈을 처음 한 이례로 한번도 혈액부족사태가 아닌적이 없었다. 꼭 코로나 때문에 혈액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매번 되풀이되는 혈액부족 사태를 왜 적십자사는 해결하지 못할까? 혈액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가 있을까? 몇 가지 이슈들을 짚어보도록 하자.
1. 장기 이식
의학에서는 혈액 역시 하나의 장기로 본다. 종합병원에서 여러가지 장기를 다루는 내과에는 "혈액내과"가 따로 있다. 폐암, 위암처럼 특정 장기에 걸리는 종양처럼 혈액암이 있다. 헌혈은 일종의 장기기증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장기 기증 분야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심각하다. 필자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간이식 대기자는 총 4279명인데 반해, 간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1061명으로 약 1/4에 불과하다. 헌혈과 수혈의 수요와 공급 불균형을 이렇게 수치화할 순 없겠지만, 매번 혈액부족 사태가 발생한다니 틀림없이 수요와 공급간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물론 현행법상으로 헌혈에 관한 법령은 "혈액관리법"이며, 장기기증 및 이식에 관한 법령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법"으로 따로 분류되어 있긴 하다. 장기는 적출되면 되돌릴 수 없으나, 헌혈은 금방 재생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다르게 관리한다고 한다.
2. 헌혈을 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혈액을 생산하는 골수에 부담을 준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운동을 해야 근육이 발달하듯이 오히려 골수에 활성에 도움을 주게된다. 칼슘이나 호르몬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건강이 안 좋다는 말도 있는데, 칼슘이나 호르몬이 조금도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할 순 없지만, 조금도 빠져나가지 않는 수준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조금만 빠져나간다. 다만 철분은 혈액의 양에 비례해서 빠져나가지만, 철분은 음식으로 바로 보충이 가능한 성분이다.
3. 헌혈자의 수가 적다?
인구 7000만 명의 영국은 한해 200만명 정도가 헌혈하지만 혈액공급 대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인구도 적고 일년에 300만명이 헌혈하는데 혈액공급 대란이 일어난다. 적어도 우리 나라의 헌혈자의 수가 적어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아닌 거 같다. 하지만 헌혈자의 수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10-20대의 헌혈이 크게 감소했는데, 100만명 이상을 유지하던 10대 헌혈자는 2016년에 100만명 이하로 떨어지고 현재는 90만명 대까지 떨어졌다. 20대 헌혈자도 21만명 가량 줄어들었다.
4. 의료기관에서 혈액을 오남용한다?
의료현장에 없던 사람은 모른다. 외상 환자의 출혈시에 혈액은 흘러나오는게 아니라 뿜어져 나온다. 혈액팩을 손으로 쥐어짜서 뿜어져 나오는 만큼 채워넣어줘야 한다. 의료진은 언제 출혈을 잡을지, 지혈이 될지 정확하게 조절할 수 없다. 의료진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거라고 하면 의료진들이 받아들일까는 잘 모르겠다. 단언컨데, 수혈이 필요한 상황에서 혈액팩은 실제 사용량보다는 충분하게 준비해야 한다. 아슬아슬하게 준비했다가 모자라는 순간 생명을 잃는다.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우리나라가 환자한테 공급하는 혈액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과다하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양측이 대립하는 의견에 대해서 필자가 딱히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수술실 현장에서는 설령 남아서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넉넉하게 준비하는게 맞다고 생각을 버리기 힘들다.
5. 헌혈이 아니라 매혈을 해야 한다?
1975년 WHO가 채택한 "2020년까지 매혈근절, 100% 헌혈로 혈액수요를 충당" 이라는 목표 제시 이후에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100% 헌혈로만 혈액수요를 충당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매혈을 할 경우 보다 혈액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생각보다 공혈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클 수가 없고, 저소득층에 매혈자가 집중될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매혈로 얻은 피는 헌혈로 얻은 피보다 훨씬 더 위험성이 크다. 매혈자는 돈을 목적으로 피를 팔기 때문에 문답지를 정직하지 못하게 작성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헌혈금지약물을 복용중이거나, 문신 시술을 받았거나 전염병 창궐 지역에 다녀왔어도 매혈을 하려고 할 것이다. 2016년 WHO 에서 직접 진행한 연구한 연구에 따르면, 혈액 내에서 혈액매개감염병인 AIDS, B형 간염, C형간염, 매독이 소득수준이 낮을 수록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매혈을 할 경우 위험성이 훨씬 높아지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6. 관리의 문제. 수요와 공급 불균형 문제가 있는데 헌혈자의 수가 적은 것은 아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편견도 있지만 헌혈자 수는 충분해 보인다. 의료기관에서 혈액을 마구 오남용하지도 않는다. 헌혈자의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니 매혈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일까? 결국은 관리의 문제라고 한다. 적정 혈액 보유량은 5일이다. 5일동안 소모될 혈액량을 최소 재고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혈액은 신선할 수록 좋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적당한거 같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명절 등으로 인하여 5일보다 길게 쉬는 경우가 많고 이런 연휴에는 헌혈량이 급감하게 된다. 매년 명절을 지나고 오면 혈액부족사태로 난리가 난다. 혈액은 35일까지 보관이 가능한데, 굳이 적정 재고량을 5일로 관리하고 있을 필요가 있는 건지 의문이다. 이것도 헌혈량이 많으면 문제 없겠지만 말이다.
7. 과학기술의 문제. 세상에는 인간이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아무리 궁리를 싸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존재해 왔다. 이럴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주던 것은 기술이다. 그 문제의 원인이 되는 부분을 과학기술로서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치료기술로서 연구된지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그 성과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줄기세포는 인간의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적혈구, 백혈구 등의 혈액구성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줄기세포 배양기술 자체는 우리나라가 최고 수준이고, 이를 활용하여 인공혈액을 만드는 일이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분화만 시키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론적으로는 필자가 타이슨과 권투시합을 해도 이길 방법이 있다. 타이슨의 주먹을 다 피하고 내 주먹은 다 맞추면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조만간 환자에게 수혈 가능한 인공혈액이 나와서 헌혈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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