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갑자기 큰 시련을 맞으면,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크게 악화되기 마련이다. 그 증상 중에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는 큰 충격을 주는 부분이 있는데, 머리카락이 급격하게 백발로 변하는 현상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젊은 사람이 백발인 경우 “고생을 많이 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올블랙에서 백발로 변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유사한 경험을 해 봤는데 2016-2017년에 큰 스트레스로 새치가 점점 많아지더니, 어느 날서부터인가 옆머리에서 하얀색 머리카락이 검은색 머리카락보다 많아진 것이다. 물론 이는 한달 두달 간격으로 벌어진 일이지 하룻밤 사이에 급격하게 벌어진 일은 아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마리 앙뚜와네트 증후군” 이라고 부른다. 1793년 프랑스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와네트가 처형일 당일 하루 사이에 백발로 변해버린 것을 두고 생긴 용어이다. 물론 필자는 정말 하룻밤만에 프랑스의 왕비 머리색이 변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하룻밤만에 머리색깔이 저절로 변한 것은 증후군이라기보다는 변신에 가까울 것이다.
프랑스는 미국에 군사지원을 하다가 재정이 거덜나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처형일까지 4년동안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와네트가 얼마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그들에 대한 평판은 제외하고서라도). 그러니 4년에 거친 세월동안 머리가 백발로 변한게 아닐까 싶다.
사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조금만 찾아보면 아주 많이 있다. 영국의 작가 토마스 무어는 헨리 8세의 이혼에 반대하다가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사형 당하기 전날 수염과 머리가 백발로 변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에 시달린 생존자들이나 전쟁 중 살아남은 병사들이 겪은 “마리 앙뚜와네트 증후군”은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플라톤도 역시 백발이 되었다.
삼국지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 조조의 장수 우금이 관우와 싸우고 패전한 뒤 돌아가는 과정에서 머리가 백발로 변한 얘기는 유명하다. 우리나라 고전문학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조신의 꿈” 혹은 “조신지몽” 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조신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온갖 고생을 하다가 아픈 아이를 치료도 못하고 굶어죽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아내와 헤어지는 꿈을 꾸고 일어났더니, 수염과 머리털이 모두 희어졌다는 내용이다.
2020년 네이처지에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털이 희어지는 현상에 대한 연구결과가 게재되었다. 검은 털을 가진 쥐에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한 후에 털이 희어지면, 그 쥐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확인한 것이다. 결론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기는 “노르아드레날린”이다. 노르아드레날린은 털에 멜라닌 세포를 공급하는 melanocyte stem cell을 모두 소모시켜 버리기 때문에, 털이 멜라닌 색소 없이 하얀색 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스트레스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도 인위적으로 melnocyte stem cell을 제거했을 때 털이 하얀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관찰하여 마리 앙뚜와네트 증후군의 이유는 노르아드레날린에 의한 melanocyte stem cell의 사멸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모공에 존재하는 줄기세포가 모조리 소모되어 검정 머리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줄기세포 치료술의 역사는 어느 새 20년이 넘었다. 그 동안 불치병 난치병 치료에만 집중되었기에, 치료 자체가 어렵고 성과도 잘 나지 않았다. 이번 연구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불치병 난치병이 아닌 다소 사소해 보이는 이러한 질병들이 어쩌면 줄기세포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다.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안구건조증이나 피부건선 등을 치료하는데 줄기세포는 일부 효능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모공에 존재하는 줄기세포를 보완해줄 수 있으면, 백발의 머리도 흑발로 바꾸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모의 치료도 가능할 것이다. 노르아드레날린의 생성을 억제하거나, 줄기세포 치료술을 통해 백발과 탈모를 치료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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