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의 일이다. 같이 재직하시는 한 교수님이 A 형 독감에 걸렸다고 연락을 주셨다. 당시에는 코로나가 유행하는 지금처럼 자가격리나 선별진료소 개념이 없었지만, 그래도 독감은 전염성 질병이니 확진되면 쉬는 것이 옳다.
그런데 다음날 딱 봐도 아파 보이는 몰골로 출근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당황스러웠지만 인사를 건네며 쉬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감기 좀 걸렸다고 쉬는게 말이 되냐?"고 대꾸하시는 통에 대화가 길어졌다. 독감하고 감기하고는 다른 거라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뇌가 받아들이지 않는 건지, 자존심인지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결국 감정 상하기 전에 한발짝 물러나서 대충 대화를 마쳤다.
소심하게 대화는 마쳤지만, 속으로는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 왜 저래> 라고 생각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감기하고 독감이 다르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간단하게 한번 알아보자.
감기는 염증성(비염이나 후두염) 혹은 알레르기성 호흡기(목감기 콧물감기) 질환으로 미열을 동반하는 경우이다. 즉, 증상을 통칭하는 말이지 감기균, 감기바이러스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알려지기로는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200종이 넘는다. 이러니 백신이나 치료제를 제대로 개발하기 힘든게 당연하다. 때문에 1년 내내 걸릴 수도 있고, 몸 안에 상주하던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약해질 때 병원성을 띄는 형태의 기회감염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급성 호흡기 질환이다. 38도 이상의 고열도 동반한다. 여러 변종이 있지만 그 뿌리는 모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다.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며 2-3주간 지속된다. 코로나와 동일한 방식(코 안에 면봉을 넣어서 검체를 얻어내고, qPCR 방식으로 검사) 진단이 가능하고, 확진시 가급적이면, 48시간 이내에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등)을 처방한다. 독감은 전염성이 매 우 강하고, 폐렴이나 천식등의 합병증을 동반하며 건강한 사람은 물론 노인이나 영유아, 임산부, 만성질환자에 매우 위험하다. 즉, <감기 좀 걸렸다고 쉬는게 말이 되냐>며 독감 환자가 출근하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이란 소리다.
독감은 겨울철에 유행하는데 독감 예방주사 접종으로 예방이 가능하지만 감기는 불가능하다. 매년 겨울 독감예방주사의 시즌이 도래하는데, 필자도 주변에 독감예방주사를 독려하곤 한다. 간혹 체질상 예방주사 접종이 불가능하신 분도 계시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비합리적인 이유로 예방주사를 거부한다. 평생 안 맞고 잘만 살았다거나, 갑자기 맞으라니 싫다거나, 단순히 병원이 싫다거나, 걸려도 안 죽는다, 난 건강하다 등... ... 이제 코로나를 겪었으니 인식이 좀 달라졌으려나? 위에서 말한 저 교수님도 사건 전에 독감예방주사 맞으라는 권유를 몹시 기분 나쁘게 거절하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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